
그중에서도 제주 4·3사건은 평화로운 섬에 남겨진 깊고도 긴 상처입니다.
이번에는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시 꺼내어 포스팅 해봅니다.
- 제주도는 서울의 약 세 배 크기의 큰 섬이다.
- 그러나, 이 거대한 섬의 극히 일부 해안가를 제외한 모든 곳이 초토화된 사건이 발생했다.
- 이러한 사건은 제주도4.3 사건의 초기 상황을 설명하며, 더 자세한 논의로 이어진다.
2. 🔥 제주 4.3 사건의 비극적 피해
- 제주 4.3사건에서 마을이 불타버리고, 그 안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 학살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했다.
- 당시 제주도관덕정에는 약 3만여 명의 주민이 모여들어 집회를 가지던 중.
- 집회가 문제없이 마무리될 무렵, 어린아이가 경차에 의해 사고가 발생.
- 그러나 경찰이 이를 무시자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했고,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했다.
-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경찰의 출근도 중단되고, 민관 합동 총파업이 발생하며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되었다.
- 미군은 제주도를 좌익의 중심지로 규정하고,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연달아 발생하는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.
- 이 시기는 미군정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초기와는 대조적이었다.
- 그러나 주민들의 비판이 높아지자, 경찰과 악명 높은 청년단이 섬에 진입하여 주민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.
- 제주도의 경제적,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규정하려는 외부 세력의 시도가 더해지며, 갈등이 심화되었다
- 결국 1948년 4월 3일, 남로당 무장대가 경찰과 우익단체를 공격하며 무장 공개가 시작되었다.
- 당시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수탕 반대와 탄압 속에서 진행.
- 선거구의 두 곳에서 투표 미달로 무효가 되자,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여 초토화 작전을 감행.
- 따라서 제주 4.3사건은 사회적 저항의 결과로 볼 수 있다.
- 제주 4.3사건 동안 많은 마을에서 사전 통보 없이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총살당한 것으로 보인다.
- 젊은 남성들이 희생되었고, 도망치지 못한 노약자 여성들도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.
- 평범한 지역인 월정리는 군 주둔지로, 그곳에 끌려간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의미했다.
- 당시 제주도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4.3 사건과 관련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.
- 제주 지역의 역사적 고통은 여전히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, 이는 지역 사회의 상처로 남아 있다.
🕊️ 2003년, 최초의 공식 사과 — 고(故) 노무현 대통령
2003년 4월 3일,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를 직접 방문한 故 노무현 대통령은
4·3사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직접 밝히고, 희생자와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전했습니다.
📍 모두발언 요약
- 정부가 4·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마무리함에 따라,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.
- 도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며, 공식적인 정부의 입장을 오늘 이 자리에서 표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.
📍 사과 전문 요약
- 4·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며,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인정했습니다.
-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도민과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를 전하며,
4·3평화공원 조성 및 명예회복, 추모사업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. - 과거의 진실을 바로잡고, 화해와 통합을 통해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로 나아가기를 기원했습니다.
🌿 2021년, 문재인 대통령의 추도사와 특별법 개정
2021년 4월 3일, 제73주년 4·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4·3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고,
정부 차원의 추도사를 통해 희생자와 유가족, 제주도민의 아픔에 공감과 지지를 보냈습니다.
- 국방부장관, 경찰청장까지 참석한 정부 주관 공식 추념식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.
- 대통령은 “이제야 4·3은 자기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”며, 4·3특별법 개정의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.
- 명예회복, 재심을 통한 무죄 판결, 트라우마센터 운영, 유해 발굴 및 신원 확인,
그리고 보상과 배상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국가 책임 이행 계획을 밝혔습니다.
무엇보다 이 날의 추도사에서 강조된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.
4·3은 대립과 아픔에 갇히지 않고, 평화와 인권의 역사로 승화되었다는 것입니다.
💬 제주쌍둥이네가 전하는 4·3의 의미
2025년 4월 3일, 어느덧 제주 4·3사건 77주기를 맞이하였습니다.
아직도 유족들의 상처는 남아 있고, 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도 있습니다.
하지만 이제는 제주도민뿐 아니라 전국의 국민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.
저희 쌍둥이들도 아직 어린 나이지만, 함께 평화공원을 걸으며 조용히 묻힌 이름들을 바라봤습니다.
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함께, 4·3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.
🔗 함께 가볼만한 연계 장소
- 제주 4·3평화공원: 사건의 진실과 유족들의 기록을 전시한 대표적 기념 장소
- 너븐숭이 4·3기념관: 북촌리 주민들의 증언과 기록이 담긴 지역 전시관
노무현 /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 전문은 아래 링크로 확인 가능합니다.
출처
제주의소리
제주 인터넷 신문, 정치자치, 경제, 사회교육, 환경, 평화 뉴스 등 수록
www.jejusori.net
제주4·3평화재단
4·3평화기념관 휴관일 4월의 휴관일 : 7 / 21일 매월 첫째, 셋째 월요일 〈단, 공휴일(대체공휴일)인 경우에는 그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〉
jeju43peace.or.k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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